[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올 초부터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는 SK와 한화 관계자들이 만나 TC본더 납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한미반도체 장비 의존도를 줄여 공급망 다변화를 시도하고, 한화정밀기계도 TC본더 장비 품질을 높여 SK하이닉스에 납품하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TC 본더는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을 완료한 반도체 칩을 회로 기판에 부착하는 장비다. 여러 개의 D램 칩을 쌓는 HBM 공정 수율을 좌우할 만큼 중요도가 높다. 그동안 한미반도체가 독점으로 SK하이닉스에 이 장비를 납품해왔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올해 하반기부터 HBM3E 12단을 개발하면서 일부 공정이 바뀌며 좀 더 공정에 적합한 장비의 필요성이 생겼다. 8단 제품과 같은 조건에서 4단을 더 쌓아야 되면서 단일 D램의 두께가 얇아지고, 이로 인한 '휨'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D램의 본딩을 할 때 열을 조금 가해 기존 보다 더 단단하게 붙이는 가접합 단계를 거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한미반도체 장비를 독점으로 사용했으나 12단에서는 가접합 단계의 과정이 완벽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장비 성능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한미반도체 장비의 성능이 떨어지거나 불량이 발생할 경우 또 다른 공급처가 없다면 HBM 제품을 엔비디아에 제때 납품하기가 어려워진다. 또 장비 납품 계약 시에도 공급망이 단일화 되면 가격 협상 등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리스크 관리와 원가 절감, 장비 품질 제고 등을 위해 ASMPT, 한화정밀기계 등과 함께 제품 다변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12단용 TC본더의 경우 ASMPT의 장비 성능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현재 평가용 장비가 SK하이닉스에 납품됐으며 장비 사이즈와 생산성 등을 개선해 최종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약 31대의 장비가 납품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화정밀기계 장비는 퀄 테스트는 통과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양산 경험이 없어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 좀 더 성능이나 품질에 대해 검증을 해보자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TC본더 장비에 대해 이원화로 갈지 삼원화로 갈지에 대한 판단과 타 장비의 성능 등을 고려해 한화 장비를 사용할지 여부 등을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에서는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 분할 상장 전이나 불꽃 축제 전에는 SK하이닉스에 장비 납품을 하기를 원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화정밀기계의 장비가 퀄 통과가 실패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도 그룹에서 적극 대응하는 등 한화그룹 자체에서 매우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한화 입장에서는 이번 SK하이닉스 장비 납품을 두고 회장 보고가 진행 될 만큼 매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최근 김승연 회장이 한화비전 미래비전총괄인 '3남' 김동선 부사장과 함께 한화 판교 R&D 캠퍼스'를 찾아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 연구실에 들르는 등 관심이 크다. 이 자리에서 직접 한화정밀기계의 TC본더 장비 시연을 지켜보기도 했다.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비방산 자회사인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인적 분할한 신설 중간 지주사다. 김 부사장은 기존 맡고 있던 유통(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레저), 한화로보틱스(로봇), ㈜한화 건설부문 외에도 반도체 장비와 보안솔루션 부문에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김동선 부사장이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를 성공적으로 론칭했지만 본업인 백화점과 호텔 등 유통업이 부진하면서 성장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김승연 회장이 잠행을 멈추고 직접 판교 R&D 센터를 방문하는 등 김 부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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