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삼성전자가 기본이 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정기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
정기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부사장은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7회 반도체 산학연 교류 워크숍'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회사가 경쟁할 때 덩치가 중요한데 삼성전자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 LSI를 다 합치면 다른 곳보다 덩치가 부족하지 않다"며 "어느 기업이든 경쟁력에 부침이 있기 마련이지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근원적인 기술력만 놓고 보면 이기지 못할 기업은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정 부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인공지능(AI) 업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수익성이 높은 파트너십으로 꼽히던 엔비디아와 대만 TSMC의 협력에 균열 조짐이 보이면서 삼성전자에 기회가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실제 엔비디아가 TSMC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TSMC의 동일한 칩 대비 20~30% 저렴한 금액으로 삼성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기술력만 뒷받침 된다면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이 TSMC 독주체제를 무너뜨리고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엔비디아와 TSMC가 블랙웰(Blackwell) 칩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30년 가까이 이어온 파트너십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삼성전자가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부사장이 직접 삼성 파운드리의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면서 다시금 사업의 불씨가 켜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이 부침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파운드리 부문에서 세계 최초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도입했지만 처음 기술을 적용하느라 수율이 나오지 않으면서 고객사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첨단 파운드리 공장의 가동 시점도 고객사가 전무해 2026년으로 연기하는 등 가동률 조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TSMC는 3나노, 5나노 등 선단(첨단)공정 부문에서 고객사를 모두 쓸어가며 점유율 92%를 기록,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내년부터는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SMC는 2나노 공정에서 GAA를 처음 시도하는데 공정 특성상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수율을 높이기가 쉽지 않고 비용도 올라가겠지만, 삼성전자는 GAA 기술을 먼저 도입하면서 상대적으로 2나노에서 안정성을 보이며 고객 확보에 힘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3나노에서는 TSMC가 기존 핀펫 기술을 고수해 안정된 수율과 가격경쟁력으로 삼성에 경쟁우위를 확보했다"며 "GAA가 핀펫보다 전력 소모나 성능 면에서 우수했지만 삼성이 수율 확보의 어려움을 겪은 사이 고객사가 이탈했지만 2나노에선 이와 정반대로 TSMC가 GAA 신기술의 어려움을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엔비디아와 TSMC의 미묘한 기류도 삼성전자에게는 호재다. 엔비디아와 TSMC의 협력 균열의 원인 중 일부는 엔비디아의 블랙웰 설계 결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엔비디아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종류의 칩을 함께 패키징하는 TSMC의 새로운 기술이 블랙웰 칩 생산을 지연시킨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TSMC는 엔비디아가 생산 공정을 서두르면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입장이다. 엔비디아가 매년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공할 수 있도록 TSMC를 압박하고 있다. 기존에는 격년으로 새로운 아키텍처가 나왔으나, 최근 엔비디아는 이를 매년으로 단축하려 하고 있다. TSMC는 2026년까지 매년 60%의 생산 능력 증가를 목표로 설정했지만 섬나라라는 특성상 공장 건설에 적합한 평지가 부족해 엔비디아의 요구를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과 밀려드는 주문으로 TSMC의 공급 능력이 한계에 달한 점도, 양측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원인이다. 엔비디아는 TSMC에 '전용 패키징 라인' 구축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가 최신 AI 칩보다는 비교적 간단하게 제조가 가능한 게임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를 삼성전자에 맡기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를 통해 협력관계가 강화되면 최신 AI칩 파운드리 물량도 삼성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대만 TSMC의 독점이 갈수록 공고해지자, 인텔과 삼성전자도 손을 잡고 파운드리 동맹을 타진 중이다.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직접 만나 '파운드리 부문의 포괄적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과 삼성의 '파운드리 동맹'이 성사될 경우 공정 기술 교류, 생산 설비 공유, 연구개발(R&D) 협업 등에서 포괄적 협력이 진행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이 만약 삼성전자에 반도체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식으로 협업을 추진한다면 TSMC가 수주 물량을 일부 놓치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