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기자]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해 온 수협은행이 자본적정성에 발목이 잡히면서 첫 단추인 비은행 계열사 인수합병(M&A)도 좌초하는 분위기다. 수협중앙회의 건전성 악화로 출자여력이 줄어든 데다 지역 수협조합의 경영상황 악화로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 작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수협은행은 비은행 계열사 M&A 의지를 접은 게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자본적정성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마냥 전망이 밝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협은행은 합리적인 M&A를 진행하기 위해 시장 상황을 고려해 신중히 진행하겠다는 당초의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협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12.17%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1.46%였던 것을 감안하면 6개월 만에 71bp(1bp=0.01%p) 개선된 수치다.

다만 이 같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수협은행의 CET1비율은 전체 은행권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특히 국내은행 평균 CET1비율(13.18%) 보다 101bp 낮은 수준이다.

CET1비율은 금융사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이자 주주환원 정책에도 기준이 되는 지표이다. M&A 과정에서 CET1비율이 중요한 이유는 인수 후 CET1비율이 낮아질 수 있어서다. CET1비율 산정 시 모수가 되는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CET1비율 권고치는 8.0%(금융체계상 중요 은행은 9.0%)다. 하지만 수치가 높을수록 건전성이 양호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13%를 안정권으로 보고 있다. 

수협은행이 그동안 M&A 매물을 찾는 데 애를 먹은 것은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적정 매물이 없었단 이유도 있다. 여기에 최대한 자본적정성을 덜 훼손하는 방향으로 M&A를 진행하려다 보니 대상 선정이 쉽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노동진 수협중앙회 회장이 국회 농립축산식품해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수협은행 지주 설립에 대해 "여러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보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이 중단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감장에서 수협중앙회장의 공개 발언이었던 영향이 컸다. 이유는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지역 수협조합의 자산건전성 악화다. 지역 수협조합의 건전성 악화로 자금 지원을 늘려야 하는데 수협중앙회 역시 부채비율이 787%(8월말 기준)에 달하는 탓에 여력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수협은행이 자본적정성을 개선하려면 수협중앙회의 출자 지원이 필요한 만큼 수협은행의 지주사 전환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분석이다.

다만 수협은행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M&A를 위한 노력은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에도 웰컴캐피탈 인수가 성사 직전까지 진행됐던 것을 감안하면 현 자본적정성 수준에서도 인수 가능한 물건이 있다면 진행할 수 있다는 의지로 읽힌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도 수협은행이 M&A에 시간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최대한 CET1비율을 방어하는 선에서 M&A를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수협은행 관계자는 "지금도 내부 조직인 M&A추진실에서 계속 검토하고 있다"며 "'보류'나 '중단'이라기 보다 기존의 방침대로 인수대상 선정에 심사숙고하면서 신중히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