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양궁을 쏠 때 하는 응원은 큰소리로 외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숨죽여 지켜보는 것이다. 이미 삼성은 내부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위기 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도와주는 양궁의 응원이다."(재계 관계자)
최근 삼성전자가 위기 극복을 위한 해결 방안을 찾으며 쇄신에 나섰지만 기술 유출과 반도체 인재 부족, 주 52시간제로 인한 경쟁력 약화, 정부 규제, 미 대선 등 외부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이번 삼성전자 위기설이 단순히 삼성만의 위기가 아닌 대한민국 대기업 전반의 위기가 가시화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삼성 자체적으로도 혁신을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지만 일각에서는 장기간 외부에서 과도하게 삼성전자를 흔들고 압박하면서 조직 문화도 바뀌고 그룹의 의사결정도 위축됐다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으나 대만, 미국 등의 기업에 비해 자국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어 든든한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 52시간제 등 사회 전반에 퍼진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 52시간제 도입이 경쟁력 약화에 핵심 원인은 아니지만 조직의 긴장이 풀리고 평택 등 수도권과 거리가 먼 곳은 셔틀버스가 오후 4시부터 운행하는 등 근무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반도체의 경우 1년에 365일,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유연 근무제 도입이 필요하며 대신 높은 연봉과 스톡 옵션 등으로 보상을 주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경우도 고객사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고 실시간으로 고객사 요청과 협조에 대응하려면 주 52시간제로는 주 7일 내내 비상 대기 중인 TSMC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평가다.
성원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도 앞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주52시간제에 대해 "이렇게 묶어서는 벤처기업 자라기 힘들고 또 대기업도 미국이나 타이완, 중국 회사 못 이긴다"며 "노예계약으로 일을 시키고 돈을 안 준다면 불법으로 처벌해야하지만 높은 연봉 또는 스톡옵션으로 보상한다면 빨리 돈 벌고 싶은 흙수저에게 근로시간 제한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도 '임원 주 6일 근무' 등을 도입하면서 조직 내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직원들과 함께 목표와 비전을 공유하고 성과를 최대한으로 내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 역시 주 52시간 근로제는 생산직 근로자에게 적합하지만 성과 중심의 사무직 근로자까지 획일적이고 경직적으로 노동시간 개념을 적용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R&D 분야에서 이뤄지는 기술 혁신 속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는 평가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도 과거 반도체 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은 1시간만 멈춰도 수십억원의 손해가 날 수 있는데,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해야 한다는 개념에 예외가 적용돼야 한다"며 "오히려 전문 인력들의 생산성을 어떻게 하면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여전하다는 점도 삼성의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 회장은 오는 28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을 통한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항소심 공판에 참석한다. 이미 올해 2월 1심에서 약 3년 5개월 간의 심리 끝에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이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144여개에 달하는 추가 증거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에 무죄가 나오면서 사법리스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이 회장이 또 다시 구속이라도 된다면 사실상 삼성의 미래는 암흑에 빠지게 된다. 사법리스크로 인해 이재용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도 미뤄지고 있고, 미래전략실 등 그룹 컨트롤 타워 재건도 쉽지 않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은 준감위 2023 연간 보고서에서 "삼성은 현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내 최대 기업이지만,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화, 경험하지 못한 노조의 등장, 구성원의 자부심과 자신감의 약화, 인재 영입의 어려움과 기술 유출 등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며 "과거 삼성의 그 어떠한 선언이라도 시대에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폐기해야 하고, 사법리스크의 두려움에서도 자신 있게 벗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주주가 수백만명에 달하고, 이 회장 역시 더 이상의 승계는 없다고 밝히면서 삼성이 이제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삼성에 대한 과도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해외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를 국가적인 사업으로 지정해 사활을 걸고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의 지원은 아직 경쟁국 대비 미약한 수준이다. 곽노정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장 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2024년 반도체의 날' 기념식 행사에서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투자 시기가 늦어지면 원가 경쟁력이 낮아지는 만큼 적기 투자를 위한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회장은 "반도체 제조 시설, 인프라만큼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며 "향후 10년간 약 15만명의 전문 인력 수요가 예상되지만 공급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우수 인력이 반도체 분야를 선택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반도체 분야 대학, 연구소, 연구개발(R&D)과 관련해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한국 정부가 인프라 지원 이외에도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교적인 노력도 기울여야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가 동맹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기업평가는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미국 반도체 업체에 대한 지원 비중을 높이거나 동맹국 업체에 대한 요구를 확대할 것"이라며 "반도체 공급망 구조상 미국 외 지역에서의 생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트럼프의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관세 부과 조치 역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프라만 깔아주겠다는 것"이라며 "경제 안보 측면에서 경쟁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