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제지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재도약에 나서는 듯 했지만, 영업환경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원재료값과 전기료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대부분의 제지사가 단일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지업계가 일부 상위권사를 제외하고는 자수성가형 오너일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춰 경영에 대한 견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딜사이트는 국내 상장 제지사들의 재무 현황과 지배구조,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대양그룹 차기 후계자로 권혁홍 회장 장남인 권택환 부회장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차남 권우정 신대양제지 전무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권 전무는 신대양제지 뿐 아니라 대영포장, 대양제지공업 등 총 7개 계열사 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양그룹은 사업 수직 계열화를 이룬 터라 독립 경영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권 전무는 최근 들어 이사회에 불참하는 이상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그룹 경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 소유와 경영 일체화…오너 구성원 전원 임원직 수행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양그룹은 사실상 장남으로의 경영 승계가 굳어지는 분위기다. 한국장수기업승계협의회 회장을 맡을 정도로 중소·중견 기업 오너의 경영권 대물림을 중요시하는 권 회장은 적통 후계자인 권 부회장을 일찌감치 실질 지주사 신대양제지의 핵심 경영진으로 앉히며 승계 기반을 다져 왔다.
특히 권 회장은 장남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부를 대양그룹 경영에 참여시키며 '소유와 경영의 일원화' 체제를 완성시켰다. 안촌유치원 원장을 지낸 권 회장 부인 이경자 부회장(1947년생)은 2011년 신대양제지 사내이사로 선임돼 13년째 등기임원직을 수행 중이다. 차남 권 전무(1978년생)의 경우 외국계 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뒤 2012년 신대양제지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장녀 권 부사장(1974년생)은 제일기획에서 근무하다 오너일가 중 가장 늦은 2017년 등기임원에 올랐다.
권 회장은 오너 2세들이 총 8개 계열사의 등기임원직을 골고루 나눠 가지도록 했다. 권 부회장의 경우 신대양제지 완전 손자회사인 신대양포장 대표이사를 포함해 모든 계열사의 사내이사를 겸직 중이다. 올해 6월 상장폐지된 대양제지공업 각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장녀 권 부사장은 나머지 7개 계열사에서도 사내이사다.
권 전무는 신대양제지 100% 자회사 신대양제지반월의 각자 대표이사이며, 신대양포장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오너가 2세 삼남매 막내 권우정 전무, 이사회 참석률 '뚝'
권 전무는 삼남매 가운데 대양그룹 영향력이 가장 미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가 대표인 신대양제지반월의 경우 모기업 신대양제지의 절대적인 지배력 아래 놓여있어 경영상 제약이 많을 뿐더러 연간 매출 규모도 그룹사 하위권인 1000억원 미만에 그친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권 부회장은 신대양제지 지분율이 13.8%이며, 권 부회장 개인 회사인 신대한판지가 10.3%를 보유 중이다. 권 부회장은 직·간접적으로 신대양제지 주식 24%를 확보한 만큼 그룹사 전반으로 영향력을 발휘 중이다. 권 부사장은 가장 늦게 경영에 참여했지만, 장녀라는 점을 앞세워 권 전무보다 윗직급을 받았고, 올해 초 대양제지공업 대표이사에 올랐다. 대양제지공업은 지난해 말 기준 매출이 1500억원을 상회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권 전무가 회사 경영에 다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신대양제지는 올 상반기 총 6번의 이사회를 개최했는데, 권 전무의 출석률은 고작 17%에 불과했다. 권 회장과 이 부회장, 권 부사장이 각각 100%, 권 부회장이 83%를 기록했다는 점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권 전무는 또 다른 상장사인 대영포장 이사회 참석률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 부회장과 권 부사장 출석률은 100%로 집계된 반면, 권 전무는 60%였다. 대양제지공업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권 전무는 누나와 형이 매번 이사회(6차례)에 참석할 동안 단 2차례만 얼굴을 비춘 것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대목은 권 전무가 2021년 3월을 기점으로 주요 계열사 사내이사에서 물러났었다는 점인데, 사실상 경영 의지가 위축됐음을 시사한다.
권 전무는 신대양제지, 대영포장, 대양제지공업 3사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 이후 돌연 회사를 떠났으나, 약 2년이 흐른 지난해 3월 해당 계열사 등기임원으로 다시 선임됐다. 하지만 부진한 참석률로 미뤄볼 때 자발적 복귀가 아닐 수 있다는 시각이다.
◆ 수직계열화, 쉽지 않은 계열사 독립…컨설팅업 더 관심
업계는 대양그룹이 계열사를 분리해 2세 경영을 안착시킬 가능성을 꺼내고 있지만, 실현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권 회장이 사업 수직계열화를 이룬 만큼 계열사 간 거래 축소가 쉽지 않은 데다 오히려 사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돼서다.
대양그룹은 재활용 고지를 원재료로 골판지 표면에 붙는 '원지'와 골판지 중간부분에 들어가는 '골심지'(이면지)를 생산하고, 이를 낱개포장용과 내부포장용, 외부포장용 등 목적에 맞게 상자로 만드는 '폐지→골판지원지→골판지상자'의 사업 구조를 그리고 있다.
실제로 신대양제지가 생산한 골판지 원지·원단을 골판지 상자를 만드는 자회사들이 사들이고 있다. 신대양제지는 올 상반기 말 별도기준 매출(1077억원)의 65% 수준인 701억원을 내부거래로 올렸는데 ▲대영포장 304억원 ▲대양판지 149억원 ▲신대한판지 165억원씩이었다.
권 전무의 관심사가 제지업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는 점도 집고 넘어갈 부분이다. 권 전무는 미국 카네기멜론대를 졸업하고 SC제일은행과 비엔피파리바은행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현재 경영 컨설팅업체 안촌인베스트먼트를 이끌고 있다. 애초 안촌인베스트먼트는 종이 관련 제조업을 영위한 서부지관이었으나, 2022년 사명과 업종을 변경했다. 특히 안촌인베스트먼트 최대주주는 올해 12살인 권용준(2012년생) 군으로, 권 전무 아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후계 구도에서 밀린 권 전무가 대양그룹 오너일가로서의 상징적인 역할만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질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기보다는, 주 전공인 투자와 컨설팅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대양그룹 관계자는 "계열분리나 승계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검토되는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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