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32년간 D램 반도체 점유율 1위'라는 정상을 지켜온 삼성전자가 메모리 업계 '왕자'라는 타이틀을 놓치게 될 위기에 처하면서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선다. 올해 연말 대규모 조직 개편과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금 예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를 쓴 이윤우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뚱뚱한 고양이는 쥐를 잡을 수 없다"는 이른바 '살찐 고양이론'을 통해 강도 높은 혁신을 한 바 있다. 이에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던 전영현 DS(반도체) 부문장도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을 앞세운 강력한 '경영 쇄신'을 통해 분위기 반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임원인사에서 최소 30%, 최대 40%까지 임원을 감축할 전망이다. 그동안 실적 부진과 경쟁력 저하에 따른 책임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 계열사 한 임원은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한 인사가 한동안 이어졌다"며 "올해는 반도체 위기가 심각한 만큼 예상보다 파격적인 인사가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전 부문장이 '반성문'까지 내놓은 만큼 사업부 수장들의 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DS부문 사장단은 이정배 메모리사업부 사장, 최시영 파운드리 사업부 사장, 박용인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장, 남석우 제조&기술담당 사장,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 등이다. 특히 메모리사업부와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전임 부문장인 경계현 미래사업단장(사장)의 인물인 만큼 교체가 확실시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실적이 부진해 평가가 저조한 차부장급 직원들도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희망퇴직의 경우 비밀유지계약으로 인해 구체적인 규모와 진행 사항이 알려지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시니어 부장급들은 이미 다수의 인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했으며, 아직 차부장급들은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로 전해졌다. CL3(과장, 차장급) 기준 4개월치 월급, 퇴직금, 교육비 등이 희망퇴직 조건이다.
삼성의 한 내부 관계자는 "임원 승진이 어렵고 실적이 저조한 시니어 부장급의 경우 팀원들을 괴롭히면서 부서 내 사기를 저하시키고 협력사에 갑질이나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 등도 있다"며 "내부적으로 강력한 감사를 진행해 해당 직원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말에서 대대적인 조직 개편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 부문장은 반도체연구소 내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칩 연구개발 부문을 사업부 개발실 산하로 이동하는 등 일부 조직개편을 단행한 상태다. 전 부회장은 DS부문장으로 취임할 당시 첫 간담회에서 "5년간 반도체연구소가 한 게 없다"며 크게 질책한 바 있다.
더불어 '메모리 정상화'를 위해 파운드리 사업은 당분간 '셧다운' 등을 통한 속도조절에 나서고 파운드리 인력을 대거 메모리 사업부로 파견하면서 경쟁사와 벌어진 격차를 줄일 계획이다. 삼성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파운드리 사업부의 설비 장비가 가동 중지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구입한 8나노미터(nm) 장비도 배관을 해체하라고 지시가 내려왔다"며 "반품을 하려고 했으나 이미 포장지를 뜯어서 반품에는 실패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비대해진 조직을 정리하고 '조직 슬림화'를 통한 효율적인 의사결정으로 기술의 근원적인 경쟁력을 복원하는데 힘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뚱뚱한 고양이'가 된 삼성전자가 경쟁자를 잡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핵심 인력으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야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수년간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프로젝트의 실무자와 개발을 담당하던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고위급 임원의 의사결정에 프로젝트가 좌지우지 되면서 개발이 늦춰지는 경우가 많았다. 임원들이 본인의 성과를 위해 자사의 부서에 유리한 형태의 보고가 많아지고 이로 인해 부서간 이기주의가 심해지면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는 오히려 좌초되는 사례도 생겨났다.
이에 전 부회장은 DS부문의 부서 간 협업 프로세스를 강화하기 위해 팀 형태로 운영되는 조직을 통합, 프로젝트 중심 형태로 바꿔 '따로놀기'식 부서 운영을 없애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데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전임 부문장의 과도한 '마이크로 경영'으로 제품 개발의 자율성이 떨어지면서 개발의 속도가 줄어든 만큼 부장급이나 실무진의 자율성과 협업이 강화되는 개편이 이뤄질지도 관건이다. 또 기술력 근원적인 복원이 핵심인 만큼 경영 지원이나 인사, 재무보다는 엔지니어와 현업 실무진의 의사가 많이 반영될 수 있는 조직 개편이 이뤄질지도 관전 포인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사업부가 설정한 MBO(목표관리)가 그동안 원가절감에 초첨을 맞추면서 결과적으로 HBM 사업도 철수하고, 임원들 역시 조직에 반대되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며 "단기적으로는 조직 정비에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으로는 떠나간 인재를 다시 모을 수 있는 파격적인 성과 보상제도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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