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기자] 올해 말 임기 만료를 앞두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결정지을 가장 큰 변수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복심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농협금융 회장 등 최고경영자(CEO)를 선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강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비상임이사가 포함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강 회장의 취임 후 첫 금융지주 회장 인사인 데다 지난 3월 NH투자증권 사장 인선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례에 비춰 이 회장의 교체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특히 강 회장이 윤리경영 강화를 위해 중대 금융사고와 관련 계열사 대표의 연임을 제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이달 말부터 차기 회장 후보 선정을 위한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이석준 회장의 임기가 12월31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따르면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임기 만료 3개월 전 새로운 후보 추천을 위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의 연임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농협금융 회장의 경우 기본 2년의 임기가 주어지는 데 연임을 통해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과거 김용환 전 회장과 김광수 전 회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2년의 임기 중 양호한 실적을 실현한 '공(功)'과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에서 금융사고가 반복, 내부통제에 실패했다는 '과(過)'도 있지만, 이 회장의 '공과'와 무관하게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결정이 이 회장의 거취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농협금융 회장 인사에 농협중앙회장의 입김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농협 특유의 지배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농협은 2012년 '신경분리' 이후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로 나눠 운영되고 있다. 농협을 '1 중앙회 - 2 지주사' 체제로 개편하는 농협법 개정안에 따라 2011년 이후 상호금융을 제외한 금융부문을 금융지주로 모두 이관됐다.
신경분리는 이뤄졌지만 실상은 여전히 금융지주와 경제지주 모두 중앙회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 중앙회가 지주사의 지분 100%를 보유한 탓이다. 정부가 농협금융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시키는 금산분리 원칙에서 예외로 허용한 영향이다.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르면 중앙회가 금융지주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더라도 인사권 등을 포함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지만 농협법상으로는 중앙회가 자회사인 농협금융을 감독할 권리를 갖고 있고, 따라서 경영 간섭도 가능하다.
농협금융은 지난 4월 이사회를 새롭게 꾸리면서 비상임이사 자리에 강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박흥식 광주비아농협조합장을 선임했다. 농협금융의 비상임이사는 상징적이면서도 중요한 자리다. 우선 통상 농협중앙회장이 추천한 인사가 선임되기 때문에 '중앙회장의 최측근'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또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소속이라 CEO 선출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도가 매우 크다.
결국 ▲금융지주가 중앙회의 100% 완전 자회사라는 이유로 발생하는 경영간섭 관례 ▲금융지주 내 이사회 비상임이사가 중앙회장 최측근이라는 점이 금융지주 회장 인사에 강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배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월 NH투자증권 사장 인선을 두고 빚어진 갈등이 이 회장 연임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도 관심사다. 당시 강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이뤄진 계열사 사장 인사였다. 강 회장이 NH투자증권 사장 후보를 추천했지만 이 회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논란이 됐다. 결국 현 윤병운 사장이 선임되고, 강 회장도 NH투자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일단락 됐지만, 한편에서는 체면을 구긴 강 회장이 연말 인사에서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강 회장이 범농협 차원의 내부통재와 관리책임을 강화하고 나섰단 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강 회장은 지난 5월 공신력이 실추된 농·축협에 대한 중앙회 차원에서 지원 제한과 더불어 중대사고와 관련된 계열사 대표이사 연임 제한, 사고 발생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즉각적인 직권정지 등을 포함한 관리책임 강화 방안을 내놨다. 농협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다수 발생함으로써 농협의 공신력이 크게 훼손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과거 기업들은 매출 신장에만 몰두해 윤리경영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요즘 윤리경영은 조직의 생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농협의 사고예방을 위한 관리책임 강화 발표는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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