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조병규 우리은행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우리은행은 이달 말부터 후임 행장 선임 절차에 돌입한다. 조 행장은 후임 행장 선임 절차가 시작되기 전까지 연임을 포기하지 않으면 후보군에 포함된다.
다만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과 직원의 횡령 등 금융사고에 따른 조 회장의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어, 후보에 들더라도 연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취임 당시 내세웠던 경영목표 '순이익 1등' 은행도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그룹은 이달 내로 자회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자추위)를 열고 우리은행장 선임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금융권은 조병규 행장이 후보에 포함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스스로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조 행장은 자동으로 '롱 리스트'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후보군에 포함되더라도 잇따라 불거진 내부통제 문제와 함께 지난해 받은 저조한 경영 성적표의 영향으로 연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조 행장은 취임 당시 기업금융 역량과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 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기업금융의 명가'로서 차별화된 서비스로 시장을 선도하고 기업과 동반 성장하자"며 "중소기업 특화 채널을 신설해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고, 새롭게 성장하는 유망한 기업에 투자하는 등 기업금융 영업력을 극대화하자"고 말했다.
실제 조 행장은 2012년 본점 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 2014년 대기업심사부장, 2017년 강북영업본부장, 2022년 기업그룹 집행부행장 등을 거친 '기업영업 전문가'로 꼽힌다.
이 같은 전략에 따라 기업대출 규모는 크게 늘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우리은행의 대출잔액은 324조원으로 이 중 기업대출은 183조원(56.5%)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161조원) 대비 13.7% 늘어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은 3.8% 증가한 137조원이었다.
하지만 기업금융 확대와 함께 건전성 지표는 악화됐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상반기 기준 0.32%로 지난해 말(0.24%)보다 상승했다. 부실채권 지표인 기업의 고정이하여신은 5697억원으로, 지난해 말 3939억원 대비 44.7%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0.27%)은 소폭 개선됐고, 고정이하여신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과 다른 모습이다.
올해 초 공언한 '시중은행 순이익 1등' 목표도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순이익은 2조515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0% 급감하자 조 행장은 이같은 경영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나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4대 시중은행 가운데 겨우 꼴찌를 면한 수준이다. 우리은행은 전년동기대비 13.7% 증가한 1조6735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년동기대비 두 자릿수 이익 증가를 이뤘지만, 규모로는 4대 시중은행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이조차 4위를 기록한 KB국민은행이 홍콩 ELS 손실 보상으로 1분기 8620억원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순이익이 급감한 영향이다.
올해 들어 잇따라 발생한 내부통제 문제가 조 행장 연임의 최대 변수로 자리잡았다. 조 행장은 취임 당시 "강화된 내부통제 시스템과 명확한 프로세스를 구축해 고객이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규모 금융사고를 막지 못했다.
올해 6월 김해 지점 직원의 180억원 규모의 횡령사건에 이어 약 350억원 규모의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적정 대출이 실행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현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법률상 할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 가동해 검사 제재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우리은행이 (사건을) 숨길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강경 발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이같은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아 '은폐'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은 조 행장과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등 경영진들이 이르면 지난해 3분기, 늦어도 올해 1분기에 부정대출 여부를 인지했음에도 공시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이 부당 대출 제보를 받은 시점은 올해 6~7월이다.
은행법은 금융사고 보고·공시 의무인 '지체없는 보고 및 공시'를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은행법 54조(임직원에 대한 제재)에 따라 해당 임원에 ▲업무집행정지(금감원장 건의) ▲해임권고(주총) ▲경고(금감원)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이때 금융당국의 '문책 경고' 이상의 징계를 받게 되면 연임과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금감원은 이같은 위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2차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조 행장이 중징계를 받을 경우 사실상 연임은 불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또 중징계가 내려지지 않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물어 최종 후보 추천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연임에 실패하게 되면 전임 이원덕 행장의 사의로 잔여임기를 승계받은 조 행장은 1년 5개월로 짧은 임기를 마치게 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혹여 조 행장이 연임하게 될 경우 현 경영진에 내부통제 책임을 묻고 있는 금융당국과 맞서려는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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