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그룹은 1991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장녀인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창업주)이 분가하면서 출범했다. 슬하에 세 아들을 둔 이 고문은 당시 만연하던 '장자 승계원칙'을 깨고 막내아들인 조동길 현 한솔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줬고, 장남인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은 과산화수소 사업을 영위하는 화학사를 물려받았다. 한솔케미칼은 한솔그룹 계열사로 묶이지만, 사실상 독립 회사로 운영되는 '한지붕 두가족' 체제다. 이렇다 보니 한솔가(家) 후계 작업에는 속도차가 발생한다. 가장 고령인 조동혁 회장은 장녀 조연주 부회장을 중심으로 경영승계 구도를 굳히고 있다. 딜사이트는 한솔케미칼의 경영 승계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을 조명해 본다.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이 개인적으로 투자하던 생체인식 솔루션 기업 엑스페릭스(옛 슈프리마아이디) 주식을 처분하고 등기임원에서 사임하면서 사실상 경영 은퇴 준비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녀 조연주 부회장으로의 경영 승계 시점이 도래한 만큼 비핵심 자산의 유동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경영 개입 목적, 연관성 낮은 화학사업 추진…1년 만에 주식 처분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조 회장은 올해 5월 엑스페릭스 주식 183만8262주를 주당 5300원에 처분했다. 해당 주식은 조 회장이 보유하던 이 회사 주식(219만2395주) 가운데 84%에 해당하며, 총 상장주식수(2293만8906주)로 놓고 보면 8% 수준이다. 조 회장은 해당 거래로 약 97억원 가량의 현금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 회장은 장녀 조연주 부회장에게 한솔케미칼 경영 전권을 내어주며 후방으로 물러난 상태다. 조 회장은 2015년 조 부회장에게 사내이사 직을 물려줬고, 미등기 임원으로 남아 대외 경영 활동을 최소화해 왔다.
그 대신 조 회장은 위드윈인베스트먼트가 조성한 '글로벌원-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1호'(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에 최대 출자자(지분율 46.53%)로 참여하는 등 개인 투자 활동을 벌였다. 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의 약정총액이 200억원 규모였던 만큼 조 회장은 약 94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추산된다. 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은 지난해 4월 엑스페릭스 최대주주이던 슈프리마에이치큐와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며 새로운 최대주주에 올랐다.
조 회장의 엑스페릭스 투자는 단순하게 고수익을 노렸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조 회장이 지난해 5월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엑스페릭스 기타비상무이사로 신규 선임됐는데,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생체인식을 활용한 인증용 지문 인식 스캐너 등을 생산하는 엑스페릭스가 신사업으로 연관성이 낮은 화학사업을 낙점했다는 점이다. 이에 최대주주에 버금가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조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우세했다.
세부적으로 엑스페릭스는 사업목적에 ▲화학공업제품 제조 및 가공업 ▲화학공업제품 연구 및 개발업 ▲화학공업제품 매매업 ▲각 호의 사업과 관련한 투자업을 추가했다. 반도체용 과산화수소와 등 전자소재를 생산하는 한솔케미칼과의 시너지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이사회 참석율 0%, 화학 신사업 성과 아직…장녀 승계 연장선상
하지만 조 회장은 예상과 달리 엑스페릭스 기타비상무이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이사회 참석률이 30%에 그쳤음에도 약 2억원 상당의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이 회사 등기이사 6명은 총 13억1100만원을 수령했는데, 인당 평균 2억1900만원이다. 조 회장은 올 들어서는 단 한 차례도 이사회에 나가지 않았으며, 1분기 중 돌연 기타비상무이사직을 내려놨다.
이 기간 엑스페릭스의 신사업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엑스페릭스 측은 "자회사 설립을 통해 화학공업제품 신규 사업에 진출할 예정"이라며 "효과적인 프로젝트 계획이 수립되면 신규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고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이 엑스페릭스 주식을 손해 보고 팔았다는 점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조 회장은 엑스페릭스가 지난해 9월 단행한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이 회사 주식 35만4133주(50억원 규모)를 확보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해산한 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에서 현물분배 방식으로 183만8262주를 받았다.
조 회장의 엑스페릭스 지분율은 9.62%까지 늘어났으며, 그가 보유한 주식의 주당 평균가격은 6842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조 회장은 위드윈신기술투자조합에서 지급받은 주식 전량을 평균 매입 단가보다 약 20% 저렴하게 팔았다. 다만 3자배정으로 취득한 주식은 정리하지 않았는데, 보호예수가 만료되는 올해 9월 이후 처분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투자 사업을 정리한 배경으로 경영 은퇴를 꼽고 있다. 장녀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 수월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지분 유동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조 회장이 조달한 현금은 조 부회장의 승계 부담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조 회장은 현재 한솔케미칼 주식 가운데 약 5%를 담보로 595억원을 대출을 받은 상태인데, 엑스페릭스 주식 매도금을 대출 상환에 쓸 수 있다.
한솔케미칼 관계자는 "조 회장이 엑스페릭스 주식을 매도하고 등기임원에서 사임한 것은 개인적인 사유"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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