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 편집국장] 10년이 훌쩍 넘는 어느 해 기업공개(IPO)를 앞둔 기업의 대표를 만났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 인물이다. 당시 그는 "국내 시장 점유율 90%까지도 자신있다"고 기자에게 사업가의 호기를 부렸다. 해당 기업은 이미 과점 시장에서 점유율 50%가 넘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였다. IPO를 앞둔 대표에게 덕담을 건네야 했으나 기자의 오기로 돌려줬다. "국내에서 점유율 90%가 되면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다. 50%를 약간 웃도는 선에서 경쟁체제를 유지하는 전략이 나을 수도 있다."
이후 IPO에 성공했고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위축되면서 점유율을 순조롭게 올려나갔다. 90%까지는 아니지만 시장을 장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자의 '저주'가 맞았을까. 그 기업은 가격 담합을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대표는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갔다. 감사원까지 나서서 해당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지도·감독이 옳았는지 감사를 벌이기도 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 때문이었다. 그사이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면서 점유율은 정점에서 내려와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리면서 성장세를 유지했으나 과거보다는 둔화된 모습이 뚜렷하다.
최근 공정위가 쿠팡을 상대로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단일 사안으로 한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에 가장 많은 금액이다. 쿠팡이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상단에 노출시키려고 알고리즘을 조작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소비자 기만이라는 설명이다. 쿠팡은 반발했다. 공정위는 21만 개의 중소 입점업체가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으나 쿠팡은 가장 중요한 피해증명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좋은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이커머스 시장의 전략 자체를 공정위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프라인 매장도 PB 상품을 입구에서부터 진열하고 있다며 명백한 역차별이라는 점도 어필했다.
쿠팡의 주장도 조목조목 일리가 있다. 더구나 쿠팡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는커녕, 점유율 30%가 넘는 과점적 지위 보유자도 아니다. 한국경제인협회 통계에 따르면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13.9%, 공정위 기준으로는 24.5%다. 시장 일각에서는 쿠팡에 점점 밀리는 대형 유통기업의 '쿠팡 견제론'이 작용했다는 음모설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쿠팡은 전혀 잘못이 없을까. 잊을 만하면 나오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혹사 뉴스가 쿠팡을 괴롭힌다. 유통시장의 혁명인 로켓배송은 노동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또, 입점업체에 대한 명목 수수료율과 실질 수수료율 간의 괴리도 논란거리다. 입점업체 쿠팡이츠의 무료배달 선언도 다른 경쟁사를 자극하고 있다. 배달 앱 사이 경쟁으로 음식점 주인은 괴로울 뿐이다.
쿠팡은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내하면서 과감한 투자와 전략으로 가장 치열한 시장인 유통시장의 지형을 바꿔놨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쿠팡 서비스의 가장 큰 수혜자는 소비자다. 그런 소비자조차도 최근 와우 멤버십 가격 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편리함에 이미 중독된 영향이다. "쿠팡은 편리하지만 마음 한 편을 불편하게 한다"는 지인의 말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앞서 언급한 기업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여서 혼이 났지만, 쿠팡은 경쟁 시장에 인정사정 두지 않아 견제를 받는 것은 아닐까.
미국 TV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사르노프 전 NBC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경쟁은 제품에서는 최고의 결과를 낳고 인간에게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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