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바이오투자가 시들시들해진지 오래다. 한때 창업만 하면 수백억원의 벤처투자를 받았던 시기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이제는 바이오 기업 스스로 몸값을 낮춰도 투자를 하겠다는 제안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바이오 기업들의 연이은 모럴 해저드와 실적 부진 탓에 코스닥 시장에서도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바이오 투자 시장의 문제점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딜사이트에서 살펴봤다.
[딜사이트 한은비 기자]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데 더해 파두 사태의 영향으로 기술특례상장 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바이오 투자 업계의 혹한기가 길어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장기적인 가격 조정 수순에 따라 제약·바이오 산업에 껴있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특례상장제도는 기업의 실적보다는 잠재력을 기준으로 상장 여부를 평가한다. 매출 발생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한 바이오 분야 벤처기업들이 기업공개(IPO) 추진을 위해 주로 활용하는 제도다. 그러나 최근 깐깐해진 심사 요건에 상장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통보를 받은 바이오텍들이 속출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지피씨알(표적항암제 개발 기업) ▲퓨쳐메디신(신약 개발 기업) ▲쓰리디메디비젼(메디컬 에듀테크 전문 기업) ▲하이센스바이오(치과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등 주요 바이오 기업들이 기술특례상장제도의 높은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거래소 심사 기준이 엄격해진 데는 기술특례상장을 활용해 지난해 8월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반도체 팹리스 업체 파두의 영향이 컸다. 상장 직후 회사 매출액이 상장 전 추정치에 훨씬 못 미치자 '뻥튀기 상장 의혹'이 일었고 상장을 주관한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IPO 추진 기업이 상장 과정에서 추정 실적을 부풀려 제출했는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일어난 바이오 투자 유행에 힘입어 높은 기업가치로 증시에 들어선 바이오 기업들이 상장 후 문제를 일으키며 거래소의 불신을 키웠다.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상장한 기업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일정 수준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상장한 뒤에도 실적 부진을 겪으며 상장 폐지 위기까지 몰린 기업들이 다수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로 셀리버리, 신라젠, 바이로메드 등이 있다. 셀리버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개별재무재표 기준 매출액 0원을 기록했다. 회사는 현재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황이다.
또한 신라젠은 문은성 전 대표가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회사 지분을 부당하게 취득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가 정지됐다. 바이로메드 또한 매출액 유지를 위해 바이오 기업과 무관한 사업을 영위하는 적자기업을 인수하는 등 기형적인 경영전략을 보였다.
벤처캐피탈(VC)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투자에 과하게 관심이 쏠려 거품이 잔뜩 꼈던 시절에는 의사나 대학교수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퉈 창업에 뛰어들었다"면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 없이 아이디어만 제안해도 돈이 모였을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공부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투자 유치를 받고 난생 처음 수백억원대 수준의 자금을 굴리게 된 것"이라며 "추후 실사를 나가보면 투자금 상당을 기술 개발에 쏟기보다 사무공간 개조 등 엄한 곳에 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신약 개발 스타트업들의 IPO 추진에 연신 제동이 걸리자 VC들도 바이오 투자에 한층 조심스러워진 분위기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최근에는 프리 IPO 단계에서 공모 상한가를 800억~900억원 수준까지 낮게 책정해도 투자가 쉽사리 이뤄지지 않는다"며 "기업마다 보유한 원천기술에 따라 기업가치는 각기 다르게 설정되지만 요즘에는 1000억~2000억원 정도가 평균"이라고 말했다. 기업가치가 5000억원에서 1조원까지 오르던 과거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제서야 바이오 벤처업계가 정상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시 말해 우수한 기술을 내세울 수 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진에딧(유전자 의약품 개발 업체)이나 카나프테라퓨틱스(혁신 신약 개발 업체) 등 회사가 지닌 기술을 앞세워 진정성 있게 경영하는 곳은 여전히 투자 유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업황이 좋지 않은 만큼 예전처럼 무늬만 창업자인 사람들은 대부분 관련 업계를 떠났다"면서 "곧 바이오 업계 불황을 견뎌낸 사람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앞선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분야의 투자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관련 업종의 전망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면서 "고령화 등에 따라 의료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산업 자체는 성장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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