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양해 기자] 현재 내시경을 활용한 비침습(피부를 뚫거나 절개하지 않는 방식) 수술은 왼손으로 종이를 잡지 않고, 오른손으로 종이를 자르는 것과 같아요. 칼이나 집게만 있고 이를 보조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초소형 로봇손'을 활용해 보다 쉽고 안전한 내시경 절제술을 대중화할 계획입니다".
김병곤 엔도로보틱스 대표(사진)는 22일 딜사이트와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어느덧 10년 가까이 내시경 관련 로보틱스 기술을 연구해온 만큼, 기술력 측면에서도 경쟁사 대비 두세 단계 높은 수준을 갖췄다고 자신했다.
엔도로보틱스는 2019년 4월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홍대희·전훈재·금보라·최혁순 고려대학교 교수진과 김병곤 대표가 공동 창업했다. 사명은 내시경을 뜻하는 '엔도스코프(endoscope)'와 '로보틱스(robotics)'를 융합해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느낌을 살렸다.
김 대표는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학부생 시절부터 내시경을 활용한 비침습 수술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고칠 수 있는 질병의 치료법은 결국 환자의 부담이 적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법칙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민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김 대표는 당시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장학금을 받는 산업장학생이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해당 기업에 입사하는 조건으로 학비를 지원받았다. 회사에 입사하지 않으면 그동안 지원받은 학비를 한꺼번에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내시경을 활용한 비침습 치료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창업을 결심할 수 있었다"며 "개복 수술이 복강경(침습) 형태로 전환한 것처럼 여러 측면에서 환자 부담을 덜 수 있는 비침습 방식이 결국엔 대세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전했다.
엔도로보틱스는 설립 후 한 달 만에 시드(초기) 투자를 유치했다. 고려대학교기술지주회사로부터 1억원을 받고, 곧바로 팁스(TIPS)에 선정되며 총 7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추가 확보했다.
이듬해엔 마그나인베스트먼트로부터 10억원의 프리시리즈A 투자를 받았고, 2021년엔 48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투자자로는 케이넷투자파트너스, 패스파인더에이치, 케이그라운드벤처스, 서울경제진흥원, 세진메탈, 한국기업가정신재단 등이 참여했다.
지난달엔 2년 만에 후속투자를 유치했다. 프리미어파트너스, 엘앤에스벤처캐피탈,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캐피탈, 동훈인베스트먼트, 패스파인더에이치 등으로부터 95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조달했다. 현재까지 유치한 누적 투자금액만 150억원에 육박한다.
투자자들은 엔도로보틱스가 개발한 '로즈 플랫폼(RoSE Platform)'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제품은 내시경에 탈부착 할 수 있는 형태로 고안된 초소형 로봇이다. 위나 대장 같은 소화기관에 발생한 조기 암질환을 비침습 치료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장점은 다양하다. 우선 환자 입장에선 흉터가 남지 않는다. 식도를 통해 안으로 진입한 내시경으로 치료가 이뤄져서다. 비용도 아낄 수 있다. 다른 방식과 치료비를 일대일로 비교해도 가격이 저렴한 데다, 입원 기간이 짧아 병실 이용료까지 아낄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의사 입장에선 수술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잘라낼 부위를 초소형 로봇손을 통해 들춰볼 수 있어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다 보니 내시경 절제술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합병증인 '천공'을 예방할 수 있다는 평가다. 수술 시간도 다른 치료 방식보다 짧아 의사 한명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진료를 소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김 대표는 "초소형 로봇손을 이용하면 숙련도가 부족한 의사들도 부담 없이 내시경 절제술을 시도할 수 있고, 비교적 제거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암세포 조직을 떼어 내기도 쉬워진다"며 "수술 후 회복 기간 또한 15일에서 3일로 크게 줄어 1인당 병상수가 부족한 서구권 국가들이 병실 회전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현재 비침습 내시경 수술 시장 규모를 10조원 규모로 보고 있다. 대중화가 이뤄지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일찌감치 선도적인 입지를 구축하겠단 구상이다.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가 나오면 곧바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따낼 계획이다.
김 대표는 "로즈플랫폼의 주요 타깃은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1기 위·대장암"이라며 "진단 기술의 발달로 암 조기 진단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만큼 비침습 내시경 절제술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의미한 매출은 내년부터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1~2분기 중으로 임상시험을 마무리하고, 5월 미국소화기학회(DDW)와 7월 세계내시경학회(WEO)에서 대대적인 홍보·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하반기 세계내시경학회에선 로즈플랫폼을 이용한 내시경 절제술을 생중계하는 승부수를 띄운다.
김 대표는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입증하면 지난해 보스톤사이언티픽에 인수된 아폴로엔도서저리 사례처럼 향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M&A)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사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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