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수빈 기자] "와인 시장은 여전히 자본보다 파트너십이 더 중요합니다"

나라셀라 마승철 대표가 지난 17일 열린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대기업의 와인 시장 참여로 1세대 와인 수입·유통사가 설자릴 잃을 수 있단 우려에 30년 이상 쌓아온 네트워크로 맞서겠단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신세계프라퍼티는 미국 나파밸리 프리미엄 와이너리 '쉐이퍼 빈야드'를, 한화솔루션은 나파밸리 와이너리 '세븐 스톤즈'를 인수했다. 또한 롯데칠성음료도 현재 국내외 와이너리 인수를 검토 중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기존 국내에 와인을 수입·유통하던 업체들이 대기업의 자본력 앞에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 대기업이 와인 시장에 진출한 건 이미 10년이 넘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008년 '와인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목표로 주류 수입·유통사 신세계L&B를 설립했고 이마트, 이마트24, 이마트 에브리데이 등 계열사에 와인을 공급해왔다.

당시에도 대기업의 와인 수입·유통에 대한 우려는 상당했다. 일각에선 대기업 진출 규제를 위한 소송도 불사하겠단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대기업의 와인 시장 진출이 현재의 대중화에 일조한 건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신세계L&B가 출범하기 3년 전인 2005년부터 대형마트에서 와인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소주·맥주에 비해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좀처럼 장바구니에 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마트가 2008년부터 대규모 할인 행사인 '와인장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어 다른 대형마트도 다양한 초·중저가 와인 행사를 마련하면서 소비자들의 구매 장벽을 낮췄고, 덕분에 국내 와인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대기업의 와인 시장 참여에 대한 우려가 높은 건 이들이 수입·유통에서 나아가 아예 와이너리를 인수하고 나선 탓이다. 공급망까지 확보할 경우 원가 부담이 낮아지기 때문에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1세대 업체들은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 나라셀라는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제조 기반의 부재가 약점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승철 대표의 말처럼 와인 시장은 자본력만으론 지속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와이너리 설립·소유자들은 보통 돈보단 업력을 토대로 유통사를 택한다. 아울러 새로운 업체보단 와이너리 네트워크 내에서 파트너를 선택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와이너리를 소유할 지라도 그외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수입하는 데 있어선 1세대 업체들의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대기업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으론 대기업의 와인 시장 참여가 유통사의 지속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엔데믹 전환으로 국내서 다시 맥주·소주 판매가 늘고 있는 데다 위스키 등으로 수요가 옮겨가면서 와인 시장 둔화세에 접어든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와이너리 인수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일정 부분 수요 감소를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와인 시장 참여가 현재로썬 1세대 업체들에게 독보단 약이 되고 있지 않을까.